문화재 속의비단을 찾아
From:금교Author: 2023-07-19 14:26
산시(山西)성 샤(夏)현의‘누에고치 반 개’부터 삼성퇴(三星堆) 유적지의 비단까지, 마왕퇴(馬王堆)1호 한묘(汉墓)의 소사단의(素紗襌衣)부터 신장(新疆) 니야(尼雅) 유적지의‘오성출동방리중국(五星出東方利中國)’비단 팔 보호대까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하나하나의 문화재를 따라 그 뒷이야기를 듣고 찬란한 비단 문화를 느껴보자.
‘누에고치 반 개’부터
밍탸오강(鸣条岗) 구릉 지대에 위치한 산시성 샤현 시인(西陰)촌은 뽕나무 숲이 가려 푸른 나무가 우거진다. 원고 시대에 황제(黄帝)의 원비[임금의 정실(正室)]인 누조(嫘祖)가 이곳에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부지런하고 총명한 서릉씨(西陵氏)의 딸인 누조는 현지 선민들에게 뽕나무 재배와 누예 사육, 실뽑기, 천 짜기를 직접 가르쳐 줌으로써 짐승 가죽과 나뭇잎으로 감쌌던 원시적인 옷차림에서 탈피하여 찬란한‘시인문화’도 만들었다.
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수천년 동안 은밀하게 숨어 있었던 시인촌은 192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중국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지(李濟)는 하(夏)나라 능묘를 찾던 중에 시인촌 유적지를 발견했다. 유적지에 대한 심층 발굴에서 고고학자들은 인공적으로 절단된 반 개의 누에고치 화석을 발견했다. 여러 가지 검증 및 측정를 통해, 누에고치 화석의 길이는 약 1.36cm, 폭은 약 1.04cm라는 것이 밝혔졌다. 이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시인촌이 누예 사육과 실 뽑기의 역사에 유력한 증거를 제공함과 동시에 중국의 뽕나무 재배와 누예 사육의 역사를 4500년 전으로 끌어올렸다.‘누에고치 반 개’를 출발점으로 삼아 고고학으로 전설을 확인시키며 중국 실크 역사의 근원도 규명됐다.
무형에서 비단의 실마리를 찾다
최근 삼성퇴 유적지의 고고학 발굴 성과가 공개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여러 점의 청동기, 옥기, 금기, 상아를 비롯해 삼성퇴‘제사갱(祭祀坑)’7곳에서 비단을 발견했다. 이것으로 3000여 년 전 고촉(古蜀) 왕국이 이미 비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삼성퇴의 비단은 수천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 발견되어 당시의 비단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한 팀의 협력 덕분에‘제사갱’유기물 잔여물에 대한 연구는 이미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기물에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분자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비단의 잔여물을 찾는 과정 중, 연구팀이 개발한 키트로 진흙화, 칼슘화, 탄화, 광물화된 유물 속에서 비단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무형에서 비단의 실마리 찾기’의 미세흔적 검측 기술을 바탕으로 수천 년 동안 묻혀 있던 삼성퇴 비단의‘비밀번호’를 조금씩 풀어갔다.
고고학자들은 8호‘제사갱’에서 출토된 청동 파편 표면에서 1.8x0.8cm크기의 비단 잔여물 한 겹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현재 삼성퇴에서 발견된 가장 뚜렷하고 면적이 가장 넓은 비단 잔여물이다. 고고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청동기는 매장 과정에서 구리 이온을 지속적으로 방출해 주변 토양에 항균 미세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 비단과 같은 유기 물질 유물의 보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밖에 고고학자들은 삼성퇴 2호‘제사갱’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에서도 방직물의 흔적을 검출해 냈다.‘제사’장면에서 비단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퇴‘제사갱’에서 대규모로 비단을 찾아낸 것은 비단의 최초 기능이 제사이며 천지인신과 소통하는 데 사용되었음을 검증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4호‘제사갱’에서 고고학자들은 15cm 높이의 잿더미층이 쌓여 있는 것을 추가로 발견했는데 분석과 검증을 통해 다른 층에서 강한 피브로인(fibroin, 누에고치의 섬유를 구성하는 섬유상 단백질)이 검출되어 이 재들이 비단을 태우고 남은 재라는 것이 증명됐다.
가장 가볍고 엷은 소사단의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엷은 옷’은 어떤 것일까? 이는 바로 후난(湖南)성박물관의 진관지보(鎮館之寶) 소사단의다. 1972년, 한(汉)나라 때 누예 사육, 실 뽑기 및 천 짜기의 최고 수준을 대표하는 소사단의는 마왕퇴1호 한묘에서 출토되자마자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문자 그대로‘소사’는 염색되지 않은 실크를 의미하고‘단의’는 안감이 없는 옷을 의미한다. 고대인들은 빛깔이 화려한 두루마기 위에소사단의를 입어 두루마기의 화려한 무늬가 보일 듯 말 듯하게 어렴풋한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세상에 가장 가볍고 엷은 옷으로 소사단의는 49g에 불과해‘매미 날개처럼 엷고 연기처럼 가볍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사단의는 왜 이렇게 가벼운 것일까?
이는 서한(西漢) 사람들이 사용한 누에고치 덕분이다. 측정한 소사단의의 비단 섬유 굵기는 10.2~11.3단(旦, 직물 섬유의 굵기를 비교하는 측정 단위, 단수가 작을수록 섬유가 가늘어짐)에 불과하지만 현재 비단 직물의 섬유 굵기는 14단에 도달한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누에고치는 천 년의 진화와 함께 세심한 인공 양식으로 인해 비만이 되고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은 두꺼워져 짜낸 옷이 무거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베일을 벗은 오성금(五星錦)
2023년 CCTV 설맞이 특별 공연 댄스뮤직 프로그램 <금수(錦绣)>가 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오성출동방리중국’이라는 문자가 직조된 비단 팔 보호대에서 영감을 얻어 천년 한금(漢錦, 한나라의 비단)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중화문명의 풍채를 드러냈다.
국가 1급 문물 중 하나인‘오성출동방리중국’비단 팔 보호대는‘오성금’이라고도 불리며 현재 신장(新疆)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 이 직물의 각 모서리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꺽여 있다. 길이 18.5cm, 너비 12.5cm로 비단을 원단으로 하여 가장자리에 흰 견사로 테두리를 두르고 비단에‘오성출동방리중국’이라는 여덟 개의 한나라 예서(隸書) 문자로 짜여 있다. 수천년 전 짠 비단이 잘 보존되고‘중국’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어‘20세기 중국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 중‘오성’은 금, 목, 수, 화, 토의 5대 행성을 뜻하며‘중국’도 지금의 의미와는 달리 춘추전국 시기 주(周)나라 천자가 살았던 수도와 주변 지역, 그리고 중원 지역을 가리키며 진한(秦汉) 시기에는 진한 왕조가 관할하고 관리한 행정구역을 가리킨다. 문자 외에, 오성금에는 빨강, 노랑, 파랑, 흰색, 녹색의 오색 명주실이 얽혀 있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각각 봉황, 난조(鸞鳥), 기린, 백호 등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상금서수(祥禽瑞獸)가 직조되어 있다.
한나라 촉금[蜀錦, 쓰촨(四川)성에서 생산된 채색 비단] 직조기술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되어 이전에는 문헌이나 출토된 소량의 직물 파편에서 한나라 촉금의 면모를 엿볼 수 밖에 없었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문물 자체에 실린 정보를 효율적으로 보호 및 전승하고, 한나라 촉금의 매력을 재현하기 위해 2016년에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중국 비단박물관이 오성금을 복원하도록 승인했다. 이후 비단박물관 연구팀은 노관산한묘(老官山漢墓) 직조기를 이용해 3년여에 걸쳐 천종(穿綜), 직조 등 일련의 복잡한 공정을 완성하고 오성금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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