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 화합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

From:금교Author: 2024-03-27 09:56

 오래된 문물부터 지금까지 읊는 <시경(詩經)>의 장까지, 혁명의 봉화시대, 험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세월 속에서 오늘의 성대함을 함께 도모하고, 태평성세를 함께 누리기까지, 손을 맞잡고 마음을 합치며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는 전국 각 민족들이 색다른 가요를 부르면서 운치 넘치는 춤을 추며 한 폭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다. 기쁨과 고통, 영예와 치욕, 삶과 죽음, 운명을 함께하며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중화민족이라는 이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역사상의 민족의 ‘화(和)’

 만리장성은 중국의 랜드마크 중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세계적으로 중국의 대명사다. ‘만리장성 안팎이 고향이다(長城內外是故鄉)’라는 말이 있듯이 만리장성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끊임없이 단결하고 융합하며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얼마 전, 네이멍구(內蒙古) 박물원에 진열된 만리장성 연선에서 출토된 네이멍구 량청(凉城)현의 청동기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무인여수문포수함환이청동호(舞人與獸紋鋪首銜環耳青銅壺)’라고 부르는 이 청동기는 춘추전국(春秋战国)시대의 문물로 청동기에 호인(胡人, 중국의 북방과 서방의 민족을 일컫던 말)과 한인(漢人)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춤을 추는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2000여 년 전 각 민족이 교류하고 서로 배우며 노래하고 춤추던 생생한 장면이 눈 앞에 선하다.

 네이멍구 박물원의 소장품 중에는 ‘육체문야순패(六體文夜巡牌)’라 불리는 원(元)나라 영패(令牌, 고대에는 명령을 전달하거나 군대를 파견할 때 사용했던 증빙 물품)도 있다. 볼품 없어 보이는 청동으로 만든 영패에는 산스크리스트어, 티베트어, 한자, 몽골어, 파스파어, 페르시아어 글자가 새겨져 있어 당시 위수 부대가 지키던 곳에 각기 다른 민족이 모여 살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유례없는 민족 대융합을 반영하고 있다.

 문물은 중화민족의 대융합과 대단결의 역사를 증명하며 더 많은 역사적 기술에서 우리는 중화민족의 화합의 광경을 볼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길 ‘한 국가의 토지 강역은 천 리나 광대한데, 이것은 백성이 사는 지방이다(邦畿千里,維民所止)’라고 하였듯이 각 민족의 조상들은 손발이 닳도록 일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조국의 금수강산을 공동으로 발전시켰다.

 진(秦)나라의 ‘서동문, 차동궤, 양동형, 행동륜(書同文,車同軌,量同衡,行同倫, 글은 같은 글자를 쓰고 수레는 두 바퀴의 축을 같이 하며 양을 잴 때는 같은 저울을 쓰고 행함은 윤리가 같음. 즉, 나라 안이 잘 통일되어 있음을 비유함)’은 중국 통일의 다민족 국가 발전의 여정을 열었다. 남북조(南北朝)처럼 분립하지만 모두 중화의 정통성을 자랑한다. 송요하금(宋遼夏金)처럼 대치(對峙)해도 모두 ‘도화석(桃花石, 옛 중국의 호칭)’으로 불린다. 진한(秦漢), 수당(隋唐), 원명청(元明清) 등과 같이 통일하여 ‘육합동풍, 구주공관(六合同风,九州共贯, 천하가 통일되어 풍속과 교화가 같아지고, 정치, 문화, 경제 체계가 통일되어 다른 지역의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여 정신과 사상이 통일됨)’했다.

 역경 속에서 운명을 같이하다

 연말연시, 둥베이(東北) 지방에 빙설경제의 동풍이 크게 불었다. 하얼빈(哈爾濱)의 중앙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관광객들은 이 거리의 유럽식 건축풍경, 백 년 된 옛거리의 매력 외에도 또 다른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어룬춘족(鄂倫春族) 주민은 귀한 노루뿔 모자를, 허저족(赫哲族) 주민은 우쑤리강(烏蘇里江) 물고기를, 어원커족(鄂溫克族) 주민은 순록을 가져왔다. 다양한 민족 정취가 하얼빈의 색다른 풍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룬춘족 하면 많은 관광객들이 어린 시절 배운 동요 <용감한 어룬춘(勇敢的鄂倫春)>을 떠올린다. ‘높고 높은 흥안령(興安嶺) 대삼림 안에 용감한 어룬춘이 산다네…’ 하지만 어룬춘족은 삼림의 용감한 백성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영웅의 후손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31년 ‘9.18’사변 이후, 항일의 봉화가 둥베이 전역을 신속하게 휩쓸었다. 민족이 멸망 위기에 처했을 때, 어룬춘족 사람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항일연합군을 위해 물자를 운송하고 안내자가 되고 정보를 전달했다. 그들은 사냥용 활과 창을 들고 침략군과 결사항전을 벌이며 선혈로 조국을 지켰다. 연합군이 극심한 추위에 시달리자 사냥감으로 외투를 만들어 전사들의 추위를 막았고 조상들의 의술로 병사들의 상처를 치료했다. 4개 민족 11명의 의사(義士)들이 의형제를 맺고 일본 침략자들에 맞서 맹세를 했다. 그 중 맏형 가이산(蓋山)은 어룬춘족 사냥꾼으로 그 전까지는 숲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결국 어룬춘 부락 전원이 둥베이 항일연합군에 참가했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야 흥안령 대삼림으로 돌아왔다. 올 때는 17000명이었는데 돌아왔을 때는 1000명이었으며 지금까지도 9000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어룬춘족뿐만 아니라 전체 둥베이 항일연합군 군대 자체가 각 민족이 공동으로 구성한 것이다. 백족(白族)의 저우바오중(周保中), 한족(漢族)의 자오이만(趙壹曼)과 리자오린(李兆麟), 만족(滿族)의 천한장(陳翰章), 조선족(朝鮮族)의 리훙광(李紅光) 등 귀에 익은 이름들 뒤에는 국가를 수호했던 감동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태평성세를 함께 누리다

 시간이 흘러 오늘로 눈을 돌려본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즐거운 축제에 참가한 둥베이 지역의 소수민족 군중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대변’해 이 문화관광 붐에 또 하나의 영광을 더했다. 구이저우(貴州) ‘춘차오(村超, 농촌 축구 슈퍼리그)’ 경기장에서는 각 민족 사람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윈난(雲南) 포수이제(潑水節)에는 사람들이 즐겁게 한 자리에 모여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축복한다. 쓰쯔왕치(四子王旗) 첫 빙설 나다무(那達慕)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하르바(哈日靶), 경마, 설상용주, 빙설음악회 등이 기쁨과 놀라움을 잇달아 선사한다.

 사실, 민족 화합의 아름다운 장면을 이런 축제와 명절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장(新疆) 타청(塔城), 중국 북서쪽 변경의 작은 음식점 안에 다양한 풍미를 융합한 특색 케이크, 가정식 요리 및 풍미 넘치는 장아찌까지 있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구미를 맞춘다. 현지 러시아족(俄羅斯族) 청년과 한족 처녀의 혼례에서 위구르족(維吾爾族)이 탬버린을 치며 서막을열었다. 카자흐족(哈萨克族)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무도장으로 몰려들었다. 골목 어귀, 함께 놀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 제각기다. 어떤 사람은 회족의 작은 흰 모자를 쓰고, 어떤 이는 위구르족의 작은 꽃무늬 모자를 쓰고, 어떤 이는 사냥 모자를 쓰고, 어떤 이는 양복을 입고 있다. 춘절(春節), 단오절(端午節), 중추절(中秋), 러우쯔절(肉孜節, 라마단, 이슬람교의 제일), 구얼방절(古爾邦節, 희생절), 나다무절(那達慕節), 시첸절(西遷節), 워치베이절(沃其貝節), 싸반절(撒班節)… 잔치를 즐기는 타청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좋은 날을 놓칠 리 없다. “당신은 어느 민족입니까?” “중화민족입니다!” 이는 타청 지역에서 외지인과 현지인 사이에 흔히 볼 수 있는 문답이다.

 이 금수강산은 각 민족이 공동으로 발전시켰다. 번영한 이 중화문화는 모든 민족이 공동으로 창조했다. 이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다채로운 생활 풍경도 각 민족이 공동으로 창조했다. 삼림 속에서, 초원에서, 번화가에서, 시골 들판에서, 곳곳에서 조화로운 악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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