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 북부의 고풍스러운 운치
From:금교Author: 2025-03-14 16:50
‘땅 위에 문물을 보려면 산시에 가야한다’는 말이 있듯이 산시는 총 2만 8027곳에 달하는 고대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고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성(省)이다. 전에 <검은 신화: 오공>이라는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의 배경은 산시성 27개 지점을 실제로 촬영한 것으로 수많은 ‘천명인(天命人, 게임 캐릭터)’들이 줄줄이 산시성에 들어와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산시성의 고대 건축물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80여 년 전, 비바람이 몰아치던 시절에 산시성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두 쌍의 특별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린후이인(林徽因)과 량쓰청(梁思成)은 중국 건축사의 전설적인 부부로 산시성 대지를 밟아 역사의 먼지를 털어내고 보물같은 고대 건축물을 탐사했다.
신저우의 불광사(佛光寺), 숴저우의 잉현목탑(應縣木塔), 다퉁의 윈강석굴(雲岡石窟)… 산시 북쪽에 위치한 낯익은 역사적 건축물은 모두 린후이인과 량쓰청 두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검은 신화: 오공>에도 이 고대 건축물들을 모티브로 삼은 장면이 있다. 오늘날 건축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천명인’의 여정에 합류하여 산시성 북부의 옛 정취를 느껴보자.
산시성 신저우 우타이현 북동쪽으로 32㎞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한 불광사는 량쓰청에게 ‘중국 제1의 국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1937년 7월 9일 <북평신보(北平晨報)>는 ‘영조학사(營造學社) 조사단, 당(唐)나라 사원 건축물 발견, 량쓰청이 우타이 불광사에서 보고, 고궁 모형 제작 시작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량쓰청과 린후이인 등 중국 영조학사 회원들은 당나라 때 세워진 불광사의 동대전(東大殿)을 발견했다. 심원한 처마와 거대한 두공(斗拱, 큰 규모의 목조 건물에서 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며 차례로 짜올린 구조)의 기세는 웅장하여 중국 사람들만의 천년 당나라의 건축구조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사원 내에는 현재 120여 칸의 전(殿)·당(堂)·루(樓)·각(閣) 등이 있다. 이 중 동대전 7칸은 당나라 때 건축되었고 문수전(文殊殿) 7칸은 금(金)나라 때 건축되었으며 나머지는 명(明)·청(清)나라 때 건축되었다.
당시 린후이인과 량쓰청은 함께 불광사를 찾는 과정에서 기차, 버스, 노새, 화물차, 말타기, 걷기 등의 ‘구구팔십일난(九九八十一難)’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힘없이 열려 있고 불광사에는 관광객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 불광사 동대전은 목재의 97%가 당나라의 원물로 남아 있는 1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대대손손 당나라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 “이 탑은 정말 유일무이한 위대한 작품이다.” 량쓰청은 잉현목탑을 처음 봤을 때의 설레는 마음을 글에 이렇게 썼다. 량쓰청이라는 건축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잉현목탑은 산시성 숴저우 잉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궁사 석가탑(佛宮寺释迦塔)이라고도 불리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높은 목조 누각 양식의 건물로 실제 다층 사용 공간을 갖춘 현존하는 유일한 고대 목조 불탑이다. 잉현목탑은 서기 1056년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는 67.31m, 지름은 30.27m, 총 중량은 약 7400여 톤, 목재 사용량은 수만 입방미터에 달했다. 고서에는 “부도지려, 갑우우내(浮屠之麗, 甲于宇內, 불탑의 아름다움은 세계 제일이다).”라고 했으며 “멀리서 보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고 가까이 보면 백척의 연꽃과 비슷하다”라며 잉현목탑의 화려함을 극찬했다. 수천 년의 비바람을 뚫고 온 잉현목탑은 지금 푸른 나무와 붉은 담 사이에 우뚝 솟아 있고 하늘을 나는 새에 둘러싸인 채 고풍스럽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기발한 구조와 아름다움에 경탄할 만하다. 그 기발한 구조는 이 웅장하고 화려한 목탑이 쇠못 하나 없이 나무 부재가 서로 맞물리기 때문이고 그 아름다움은 탑 위아래에 있는 59가지 다른 형식의 수백 수천 송이의 꽃과 같은 두공이 마치 연꽃이 한 송이씩 피어 탑신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두공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잉현목탑은 ‘두공박물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북쪽 방향으로 가면 다퉁시에 도착한다. 1933년 9월, 영조학사 동인들은 요금(遼金)의 유적인 화엄사(華嚴寺), 선화사(善化寺) 등을 측량하고 제도하기 위해 다퉁에 들른 김에 윈강석굴을 수일간 탐사하였다. 그래서 윈강석굴 주변에도 량쓰청과 린후이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윈강석굴은 원래 영암사(靈巖寺)와 석불사(石佛寺)라는 이름으로 산시성 다퉁시 서쪽 교외 17km 지점의 우저우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중국의 유명한 석굴군 중 하나다. 윈강석굴의 굴착은 북위시대부터 시작하여 약 150년에 걸쳐 북위,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수(隋), 당 등의 왕조를 거쳤다. 윈강석굴에는 현재 주요 동굴 45개와 크고 작은 동굴 감실 252개, 석조 조상 5만 9000여 점이 남아 있다. <위서·석로지(魏書·释老志)>에는 “석벽을 뚫고 5개의 동굴을 개굴하고 불상을 각각 1개씩 세웠으며 가장 높은 불상이 70척, 그다음이 60척이며 조각상은 세상에서 가장 기발하고 웅장했다(鑿山石壁, 開窟五所, 鐫建佛像各一, 高者七十尺, 次六十尺, 雕飾奇偉, 冠于一世).”라고 기록되어 있다.
윈강석굴은 중국 석굴암 예술의 보고이자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윈강석굴은 중국의 여러 석굴사 중에서 가장 서역(西域, 옥문관·양관 이서 지역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의 양식이 강하다. 즉, 중국 고대의 북방 변방 및 서역의 각 민족의 운치가 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윈강석굴에는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예술적 요소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 양식, 장식 문양, 형상 특징 등이 포함되었다. 윈강석굴 제5굴의 거대한 좌불은 ‘운강의 미소’로 사람들로 하여금 고요함과 기쁨을 느끼게 하고 제12굴인 ‘음악굴’에는 기악비천(伎樂飛天)이 ‘가무승평(歌舞升平)’이라는 정토의 세계를 보여준다. 세계 예술의 진수를 융합한 윈강석굴은 중국 예술의 보고 중 유일무이한 보물이며 후대 중국 문화 예술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전 세계 공통의 아름다움으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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