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럽고 트렌디한 매력을 지닌 시안(西安)

From:금교Author: 2023-08-15 13:40

 주(周)나라의 예법, 진(秦)나라의 관료체제,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운치, 장안팔경(長安八景)인 바류풍설(灞柳風雪)과 안탑신종(雁塔晨鐘)… 중국 서북대지에서 가장눈부신 보배인 시안에는 13대 고도의 역사적 유산이 모여 있다. 여기에서는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이 모두 역사다. 일단 장안(長安, 시안의 옛 이름)에 들어서면 천년을 이해하게 된다. 세계 4대 고도 중 하나인 시안은 3100년 이상의 도시 건설사, 1100년 이상의 수도 건설사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로 사람들을 교육하고, 만물을 윤택하게 하며, 도시를 깊이 있게 만들어 여유롭고 자신감 있는 도시 기질을 지속적으로 잉태하고 있다.

 시안의 자신감은 풍부한 문화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반고(盤古)가 천지를 열고여와(女媧)가 하늘을 메우는 등의 이야기가 모두 여기서 발생했다. 고고학적 실증에 의하면 이곳은 일찍이 구석기 시대에 남전인(藍田人,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직립인)의 거주지였으며, 신석기 초기에‘화서국(華胥國)’,‘반파(半坡) ’,‘강채(姜寨) ’,‘회퇴파(灰堆坡)’와 같은 원시 마을이 형성되었다. 가오링(高陵) 양관자이(楊官寨)의 고고학적 발견은 중국의 도시 역사를 6000년 전 신석기 시대 말기로 이끌었다.

 기원전 1200년, 주문왕(周文王)은 이곳에 풍경(豐京)과 호경(鎬京)을 세웠는데 그 이후로 시안은 중국 역사상 1200년에 걸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한 왕조인 주, 진, 한, 수(隋), 당나라를 포함한 13개 왕조가 이곳에 수도를 세웠다. 한당(漢唐) 시대에는 중국의 대외교류의 중심지이자 세계 최초로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선 도시였던 시안은 그 발전의 절정기에 세계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많은 외국 사절과 순례자들을 끌어 모았고, 일본의 나라, 교토 등의 도시는 바로 당나라 때 시안의 모습을 본받아 세워졌다.

 중국 고대 강성한 왕조의 수도로 시안 곳곳에서 제릉을 볼 수 있으며, 유명한 실크로드는 시안을 기점으로 하고, 진시황릉병마용은 도시의 웅장하고 풍부한 역사 문화 유산을 보여준다. 시안은 중화문명사와 동양문명사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시안의 자신감은‘살아 숨 쉬는’문화 코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안백일조춘공(長安白日照春空)’의 다음 문장은 무엇입니까?”밤이 되자 시안 대안탑(大雁塔) 아래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의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고대 복장을 입은 두 배우가 각각 당나라 명인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 역을 맡아 관광객들과 교류하며 유머러스한 질문과 대답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것은 최근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 시안 대당불야성 인터랙티브 프로그램‘성당밀합(盛唐密盒)’인데 새로운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을 문제를 풀기 위해 시안에 오게 했다.

 이는 시안의 첫 번째 핫한 문화창의 프로그램이 아니다.‘오뚜기 언니’에서‘이백 화답(李白對詩)’, 오늘날의‘성당밀합’까지 최근 몇 년 동안 대당불야성에서 지속적으로 선보인 문화적 인터랙티브 프로그램은 현지 문화관광 분야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다. 많은 외지 관광객들이 시안을 찾는 목적은 ‘오뚜기 언니와 악수를 하고 싶다’에서 ‘방현령·두여회 조합과 문제를 풀고 사진을 찍고 싶다’로 바뀌었으며 대당불야성은 전통문화에 대한 혁신적인 표현을 통해 과거의 번영을 이어가고 있다.

 어둠이 내리고 화려한 등불이 켜지자 시안은 장안이 되었다. 당나라 문화의 분위기가 가득한 시안에 있는 것은 마치 천 년 전의 번화한 성세로 들어오는 것 같다. 지난해 4월 30일 ‘장안 십이시진(長安十二時辰)’ 테마거리가 문을 열었는데 전국 최초의 몰입식 당풍(唐風) 시정 생활 거리가 일반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정식으로 개방되었음을 의미한다. 시안박물원에서 AR 안경을 착용하면 전시품의 뒷이야기를 지능적으로 식별할 수 있으며 귀중한 문화재를 ‘터치’하고 ‘복구’할 수도 있다. 종고루(鐘鼓樓) 옆,이속사(易俗社) 문화거리의 야외극장에서 우렁찬 진강(秦腔)은 들려오며 ‘관(館)·전(展)·연(演)·상(商)’의 통합적인 전시는 황토고원(黃土高原)에서 발원한 오래된 노래를 세련되고 활기차게 만든다. 산시(陕西)의 저명한 문화학자인 샤오윈루(肖雲儒)는 “도시와 시대, 인민에 맞는 표현을 찾는 것은 시안에서 문물을 ‘살아 숨 쉬게’하는 비장의 무기입니다.”라고 하며 이것이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의 요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모두 가져왔다고 말했다.

 시안의 자신감은 현대적 분위기를 융합한 활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 수도로서의 풍채는 깊은 문화적 소양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떠오르는 과학 기술 혁신의 원천 사이에도 흐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안은 항상 과학 기술 혁신을 발전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하고 국가 차세대 인공지능 혁신 개발 시범구와 국가 하드 과학 기술 혁신 시범구를 건설했으며 전국 4번째 ‘이중 중심(雙中心, 종합적인 국가 과학 중심과 과학 기술 혁신 중심)’ 도시로 성공적으로 승인받았으며 국가 혁신 주도 발전에서 시안의 전략적 지점 역할과 지역 추진 효과도 점점 더 두드러지고 강력한 ‘서부의 흡인력’을 발산했다.

 산시 최대의 부화기이자 과학 기술 성과의 전환을 위한 ‘특구(特区)’로서 친촹위안(秦創原) 혁신 구동 플랫폼은 탄생일부터 과학 기술 혁신의 발전을 촉진하는 강력한 유전자를 부여받았다. 2023년 1분기에 친촹위안은 129개의 새로운 과학 기술 성과 전환 기업이 증가하고 45억 1860만 위안의 기술 계약 거래를 실현했다.

 기술 혁신의 주체로서 기업이 수행하는 과학 기술의 ‘엔진’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시안은 주체 육성에 지속적으로 집중하여 기업 혁신 능력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이 가장 특출한 면모를 선보였다. 2022년 시안의 신에너지 자동차 생산량은 100만대를 돌파하여 전국 신에너지 자동차 생산량 ‘제1의 도시’에 등극했으며,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62.8%의 증가율로 계속 증가하여 생산량이 전국의 13.8%를 차지했다. 즉, 전국에서 약 7대의 신에너지 자동차를 생산할 때마다 1대가 이곳에서 생산된 것이다.

 옛날의 장안은 바로 오늘의 시인이며 동서 문명의 교차점에 있는 이 천년 고도는 오늘날 ‘일대일로’의 중요한 도시다. 천 년의 세월을 거쳐 침전된 이 땅에는 수많은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비밀과 끝없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역사를 넘어 미래로 이어지는 이 천년 고도는 새로운 역사적 좌표에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혁신 활력과 팽배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링크: 찬란한 중국의 고도 문화

 뤄양(洛陽)

 허난(河南)성 뤄양시는 일명 낙읍(洛邑), 낙경(洛京)이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시작으로 상(商), 동주(東周), 동한(東漢), 조위(曹魏), 서진(西晉), 북위(北魏), 수, 무주(武周) 등 13개 왕조가 뤄양에 수도를 건설했으며 5000여 년의 문명사와 4000여 년의 도시사, 1500여 년의 수도 건설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수도를 건설하고, 가장 많은 왕조가 있으며 가장 오래된 도시 로 100여 개의 제왕이 이곳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난징(南京)

 장쑤(江蘇) 난징은 옛날에 금릉(金陵), 건강(建康)이라고 불렸다. 중화문명의 중요한 발상지이며 오랫동안 중국 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100만~120만 년 전에 고대 인류의 활동이 있었으며 35만~60만 년 전에 이미 난징 원인(猿人)이 탕산(汤 山)에서 생활했다. 난징의 도시 건설사는 3100년 전의 서주(西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징은 ‘육조 고도(六朝古都)’라고도 불리며 동오(東吳),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천(陳)나라 등이 이곳에 수도를 세웠다.

 카이펑(開封)

 허난 카이펑은 옛날에는 변주(汴州), 변량(汴梁), 변경(汴京)으로 불렸다. 카이펑은 제1차 국가 역사문화 명성(名城)으로 하나라, 전국시대 위(魏)나라, 오대(五代)시기 후량(後梁),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송나라, 금(金)나라 등이 이곳을수도로 정하여‘팔조 고도(八朝古都)’로 알려져 있으며 찬란한 송문화를 잉태했다. 송나라의 도읍지였던 동경성(東京城)은 당시 세계 제1의 도시이자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를 창작한 곳이다.

 항저우(杭州)

 항저우는 옛날에 임안(臨安), 전당(錢塘) 등으로 불렸다.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 오월(吳越)과 남송(南宋)이 이곳에 도읍을 세웠다. 북송(北宋)이 금나라에 멸망하자 송고종(宋高宗) 조구(趙構)가 남송을 건국하고 남쪽으로 옮겨와 항저우를 도읍으로 삼았다. 항저우는 창장(长 江) 삼각주 남쪽 지역과 첸탕장(錢塘江) 유역에 위치해 있다. 서쪽은 산악 구릉, 동쪽은 평야로 지대가 낮고 호수가 밀집되어 있으며 자원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국,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下有蘇杭)’는 명성을 얻었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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