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아성(亚圣)’의 의(义)

ソース:中国孔子网作者: 2024-10-11 16:21

 “문을 열어…” 종과 경쇠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지자 일무(佾舞)를 춤추며 맹묘 영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사회 각계의 인사 및 국내외 맹씨 종친이 경건하게 기립하여 의관을 단정히 하고,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이제사 예복을 차려 입고 신도(神道)를 따라 숙연히 아성전(亞聖殿) 앞으로 나와 아성 맹자를 추모했다. 2014년 쩌우청시 민간에서 동짓날 맹자제사대전을 회복시킨 이래 매년 이날에 사회 각계의 인사와 국내외 맹씨 후손, 유학 애호가들이 쩌우청시에 모여 맹자제사대전을 열고 있다.

 기원전 372년 추(鄒)나라(현재 지닝시 쩌우청시)에서 태어난 맹자는 어렸을 때 공자의 손자 공급(孔伋)의 문인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의 정치적 포부를 펼치기 위해 학업을 마친 맹자는 열국을 돌며 평생을 제후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그는 제(齊)나라, 송(宋)나라, 설(薛)나라, 노(魯)나라, 등(滕)나라, 량(梁)나라를 돌아다닌 끝에 추나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 20여 년의 시간이 그의 삶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마지막에는 북두칠성과 같은 <맹자 7편>을 남겨 시대의 어두운 밤을 밝혔다.

 유학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후대에 ‘아성’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인정(仁政)’, ‘민본(民本)’,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선양하고 성선론(性善論)을 주장하며 최초로 ‘민귀군경(民貴君轻)’ 사상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맹자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늠름한 호연정기(浩然正氣)인 ‘의(義)’의 주장이다.

 ‘의’는 맹자의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맹자>라는 책에서 ‘의’에 대해 백 번 이상 언급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사생취의(舍生取義)’다. 그가 보기에 ‘의’는 생명보다 고귀한 것이며 ‘대장부’에게 꼭 필요한 숭고한 인격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의와 이익 간의 분별(義利之辨)에서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로운 것을 보면 도의를 잊다)하면 안 되고 ‘유의소재(惟義所在, 도의에 맞는지 아닌지만 보다)’해야 하며, ‘의’와 ‘인(仁)’을 모두 중시하고 ‘인’은 내적의 소양, 의는 외적의 소양’이라고 주장했다.

 수천 년 동안 맹자 사상은 공자 사상과 결합하여 ‘공맹의 도’를 형성했으며, 새로운 시대의 배경에서 ‘맹자의 고향·유풍적 쩌우청’이라는 브랜드의 포지셔닝으로 주조되어 유가 문화, 모교 문화, 추노(추나라와 노나라) 문화 드의 문화가 만개한 구도를 형성하여 현지 민풍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쩌우청에 오면 곳곳에서 맹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삼맹(三孟)’으로 불리는 맹묘, 맹부, 맹림의 고대 건축군은 배치가 엄격하고 웅장하고 우아하며, 비록 2000여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엣날의 멋과 문화적 가치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아성묘(亞聖廟)’라 불리는 맹묘는 역대 맹자에게 제사를 지냈던 사찰로 주건물인 아성전을 중심으로 남북을 중심축으로 좌우 대칭식으로 배열하며 마당마다 각자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맹묘의 서쪽에는 맹자의 직계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며 살아온 저택인 맹부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대범하고 기품있는 배치로 국내에서는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된 전형적인 관아와 안채가 하나로 합쳐진 고건축물이다. 맹림은 맹자와 그 후손들의 묘소로 쩌우청 동북쪽으로 12km 떨어진 사기산 서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4월 2일부터 5일까지 맹자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맹림 앞에서 성대한 고회(古會)가 열린다.

 세월을 담은 ‘삼맹’이 고풍스럽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면 새로운 시대에 지어진 맹원은 과학기술감과 현대감, 문화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전국시대 성인례 체험, 프로젝션 애니메이션 따라 맹자 인형 만들기… 한여름에 녹음이 우거진 당왕강변과 호위산 아래에서 맹원을 만나 추루예악의 소리 속에서 색다른 문화 향연을 즐길 수 있다.

 381묘의 부지에 전통문화와 맹자요소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며 중축선에는 남에서 북으로 ‘호연지기’ 석패방, 맹자광장, 맹자조각상, 맹자대전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중축선 최북단에 위치한 핵심 건축물인 맹자대전은 한나라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그 속에 들어가면 전통문화의 향연이 점차 눈앞에 펼쳐진다. 맹자의 학설과 사상이 일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무형문화유산의 계승자가 현장에서 전통기예를 선보여 무형문화유산의 멋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쩌우청에서는 맹자의 발자취를 따라 성인의 유풍과 운치를 체험할 수 있으며 쩌우청시가 만들어진 전통문화의 매개체를 통해 역시 맹자와 시간을 초월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쩌우청시는 혁신적인 탐구를 통해 맹자 문화의 고전적인 요소를 도시 계획, 아름다운 마을, 문화 관광 상품 건설에 통합시켜 새로운 활력을 지속적으로 방출하고 있다. 614개의 맹자학당과 30개의 맹자서재가 쩌우청시 곳곳에 분포되고 있으며 <추노예악>, <맹자호숫가>, <맹모삼천>, <청춘맹자>, <맹자를 쫓는 길> 등의 레퍼토리를 출시하여 전통예악문화와 시대적 특징을 결합하여 맹자사상, 모교(母教)문화, 유교 문화를 당대에 계승하고 발양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문화의 ‘량촹’ 바람을 타고 ‘아성’ 사상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독특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編集: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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