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문묘

From:Author: 2024-01-04 15:34

묘문(출저:<위대해요!공자님!>(《大哉孔子》)P178)

진사제명비(출저:<위대해요!공자님!>(《大哉孔子》)P184)

 서한 때쯤 유학은 베트남에 전해졌고 그 후 계속 발전하였다. 베트남 민간에서 한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쓰는 '유자(儒字)'로 여겨진다. 베트남 사람들은 유교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짓밟는 것을 절대로 금지하고 유학을 이곳에서는 '양교(良教)'라고 부른다.

 베트남 최초의 국학대학인 공자를 존경하고 유교를 송상하는 상징으로써 하노이(河内)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묘를 알고 있다. 1070년 베트남 이씨 왕조 황제 이성종(李聖宗)은 승룡성의 남쪽에 문묘를 짓기로 한다. 주공과 공자, 그리고 사배와 72현인을 모시는 동시에 황친국척의 자손들을 공부하게 하였다. 처음부터 문묘는 국학당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문묘는 하노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전형적인 중국식 건축물이고 국내 여러 곳 있는 문묘와 비슷한다. 지금 보유하는 건물은 대부분 17세기 이나라 때 지어진 것이며, 부지 면적은 약 26,000㎡이고 남쪽을 향하고 있다.건물 전체는 5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밖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문묘문은 전형적인 동양 사찰 양식이다. 대배당 한 가운데에는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쓰인 한자 현판이 '강희어서(康熙御書)'라고 적혀 있다. 정전에는 공자 동상이 있고 양쪽에 중국과 베트남의 유학 대사들을 모시고 있다. 다른 곳과 다른 점은 공자와 사배(四配)의 두루마기가 모두 명나라 양식으로 되어 있어 명나라 때 베트남 유학이 절정에 달했음을 반영한다.그 중 대성문, 대성전, 규문각에는 여러 대련이 있어 공자와 유학에 대한 존경도 표현하고 있다. 톈광징(天光井)동서 양쪽에 배열하는 82개의 진사(进士)비석을 통해 시안비림의 풍격도 살짝 볼 수 있다.

 설날마다 사람들이 문묘에는 며칠 동안 성대한 제사활동을 지내고 서예, 바둑, 시, 닭싸움, 새싸움 등의 오락 활동과 축제를 진행할 수 있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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